[제5차 경주시경계탐사] 가볼만한 곳①육의당-팔우정 지은 최계종의 조선시대 별장
[제5차 경주시경계탐사] 가볼만한 곳①육의당-팔우정 지은 최계종의 조선시대 별장
  • 김종득 기자
  • 승인 2023.05.3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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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의당.
육의당.

경주시 외동읍 제내리 320번지(제내길 245번지)에는 정면4칸, 측면 1칸짜리 단아한 기와집 한 채가 있다.
육의당 최계종이 광해군 11년(1619년)에 지은 별장이다.
건물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흔치 않게 남아 있는 별장 건물이다.

흙과 돌로 담장을 두른 마당에 동남향으로 건물을 앉히고, 앞쪽에는 기둥이 4개인 4주문을, 뒤쪽에는 작은 문을 내어 바깥과 출입하게 했다.

외동읍 행정복지센터에서 약7㎞거리,
뒤쪽으로는 마석산이, 앞쪽에는 토상지(土上池)<또는 토상제> 가 있어 별장의 위치로는 더없이 좋을 듯하다.
1991년 경북도 유형문화재 263호로 지정됐다.

경주시청 홈페이지 2015년에 촬영한 육의당 사진을 보면 담장주변으로 수목을 심은 화단이 건물을 에워싸 운치를 더했으나 2023년 5월 방문한 육의당 주변은 화단을 모두 다 덜어내고 콘크리트 포장을 해 놓았다.
건물을 더 잘보이게 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주차공간을 확장하기 위한 것인지 알수 없으나 공연히 손을 대 경관을 오히려 망친 모양새다.<아래사진>

2015년 촬영한 경주시청 홈페이의 육의당과 2023년5월 육의당.
2015년 촬영한 경주시청 홈페이의 육의당과 2023년5월 육의당.

최계종(1570~1647)의 본관은 경주. 자는 경숭, 호는 육의당(六宜堂)이다.
인조때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낸 최진립의 동생이다. 임진왜란때 숙부 최봉천, 형 최진립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많은 공을 세웠다.
1594년(선조27) 무과에 급제하여 서생포 수군첨절제사를 거쳐 남포현감에 제수되었으나 1618년(광해군10) 인목대비의 서궁유폐 사건때 벼슬을 거역한 죄로 유배되었다가 이후 풀려나 이곳 제내에 그의 호를 딴 육의당을 지어 은거하며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육의는 돌을 다듬어 단을 쌓고 꽃을 심어 사계절과 아침저녁으로  알맞게 즐긴다는 뜻이라고 한다.

팔우정의 주인 최계종
외동읍 제내리 육의당은 벼슬을 등지고 고향에 내려온 최계종의 별장이지만, 주거지는 황오동, 지금의 팔우정 일대였다. 

1570년 태어난 최계종은 양부 최경천으로부터 기왓집 50칸과 노비 100명, 논 272두락, 밭 263두락을 물려 받았다고 한다.
그때 물려받은 땅과 집이 현재의 팔우정 공원 일대였다고 한다. 
훗날 팔우정이라고 이름붙인 정자는 최계종이 살던 황오동에, 1614년 그와 그와 가족들이 세운 것이다. 
최계종은 향년 78세에 일생을 마감했다.

다음은 최계종(崔繼宗)과 팔우정(八友亭)을 쓴  정승호 변호사는 최계종과 팔우정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최계종(崔繼宗)은 정무공(貞武公) 최진립(崔震立) 장군의 아우이지만, 경주최씨 사성공파(파조는 최예(崔汭) → 참군공파(파조는 최상정(崔尙貞)) → 배반파(파조는 최득하(崔得河)의 종손인 최경천(崔擎天)에게 아들이 없어 그 후사(양자)로 들어가 종통을 이었다. 계종(繼宗)이라는 이름이 이를 말해준다.

최계종은 지금의 경주 황오동에 정자를 짓고 장자인 승훈랑 최동로가 아들을 낳을 때마다 괴목(槐木, 회화나무) 한그루씩을 심었는데, 최국준, 최국필, 최국흠, 최국장, 최국빈, 최국첨, 최국성, 최국시, 총 8명의 손자가 최계종의 소망대로 우애 있게 크게 번성하므로, 후세 사람들이 그 정자를 가리켜 팔우정(八友亭)이라 하였다.

현재 팔우정 공원에 있는 팔우정 유허비와 팔우정 비석.
현재 팔우정 공원에 있는 팔우정 유허비와 팔우정 비석.

경북일보에 ‘정자’를 연재한 김동완 작가의 팔우정에 대한 설명은 근현대사까지 이어진 팔우정과 팔우정로타리에 세워둔 비석, 지금의 팔우정 공원을 잘 설명하고 있다. 

지금은 옛 팔우정로타리 인근, 지금의 팔우정해장국 길 정면의 팔우정 공원에 보잘 것 없는 정자로 재현된 듯 하지만, 1899년이후 축대가 넘어진뒤 몇차례의 개수에도 결국 무너지면서 1811년 만든 팔우정 비석만 남아 있었다.
확장공사하면서 팔우정비석이 있던 자리에 도로가 나게 되자 경주 최씨 문중이 들고 일어났다. 마침 이승만 대통령이 경주에 내려왔다.

하와이에서 이승만을 도와 독립운동을 했던 최금곡이 팔우정의 실정을 대통령에게 설명했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비석이 있던 자리에 로터리가 들어서게 되고, 비석은 로터리 가운데 축대를 쌓아 그 위에 세워졌다. 그러나 1993년 로터리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신호대가 들어서면서 비석은 동남쪽 고분쪽으로 옮겨졌다가 2009년 신호대 서쪽에 팔우정 공원이 조성되면서 그쪽으로 옮겨졌다. 팔우정 공원에는 비석 외에도 유허비를 세웠는데 유허비에 팔우정과 관련한 이야기를 새겨뒀다.(2016년3월11일 경북일보)

이어지는 아래 상자 속의 글은 5월 탐사 자료집에 게재한 김성대 신라문화동인회 부회장의 육의당과 제내리 소개글이다. 
 

육의당과 제내리 마을이름의 유래
 

글:김성대
글:김성대

육의당은 경주시 외동읍 제내리에 있다. 제내리는 ‘못안’ 마을 한자식 표현이다. 마을 유래는 다음과 같다.

「못안」은 마석산(磨石山:빼돌산) 밑에 있는 분지에 이루어진 마을로 마석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이곳에서 남북의 두 갈래로 갈린다. 옛날에는 ‘돌매’, ‘토상촌(吐上村)’, ‘석동(石洞)’이라고 부르다가 마을 앞의 토성계(土城谿)에 못을 막고부터 ‘제내(提內)’, ‘못안’이라 불렀다 하며 해방 후부터 ‘제내’라고 불렀다 한다. -경주풍물지리지-

육의당은 최계종(1570~1647)의 호이다. 광해군 때 남포 현감으로 있었는데 1618년 인목대비를 서궁에 감금시키는 ‘서궁 유폐’ 사건이 일어난다. 육의당 최계종은 “이것이 어찌 벼슬할 때인가” 하고 기필코 벼슬을 거부하였다고 한다. 벼슬을 거부한 죄로 유배형을 당한다. 평소 알고 있던 ‘한음 이덕형’의 도움으로 유배지에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 1619년에 육의당을 짓고 벼슬을 멀리하고 이곳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육의당 최계종의 대쪽 같은 성품을 알 수 있다.

1711년에 발간된 경주지리지인 『동경잡기』에는 ‘토상호’에 있다고 하였고 1933년에 발행된 『경주읍지』에는 ‘석호’에 있다고 하여 ‘토상호’와 ‘석호’는 같음을 알 수 있다

▪경주 동쪽 30리 토상호(吐上湖)위에 있다. 아름다운 경치는 또 하나의 별천지이며 현감 최계종이 지었다. -동경잡기-
▪서재를 석호(石湖)가에 짓고 여생을 보냈다. -경주읍지-

1993년 건립한 석호정사.
1993년 건립한 석호정사.

최계종은 임진왜란 중 의병으로 활동한 의병장이며 1594년에 무과에 급제한 무관이다. 벼슬은 서생포 첨사와 남포 현감을 지냈다.
최계종은 작은아버지인 최봉천, 형인 최진립과 함께 경주를 중심으로 왜병을 격퇴하는 전투에 참가했다. 최계종이 참여한 전투는 다음과 같다.

▪1592년 5월 영천 창암 전투
▪1592년 5월 경주 읍성 탈환을 위한 계연 전투
▪1592년 6월 경주 읍성 탈환을 위한 문천회맹
▪1593년 10월 울산 구강회맹
▪1596년 3월과 9월 팔공산회맹
▪1597년 7월 화왕산회맹
▪1597년 9월 팔공산 전투

육의당은 그 후 네 차례에 걸쳐 중수해서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현재 육의당은 강당으로 사용하고 있고 1993년에 ‘석호정사(石湖精舍)’를 창건하였다. 석호정사보존회에서 매년 3월 중경일(中庚日)에 향사를 지낸다. 중경일은 ‘10간지 중 두 번째 경(庚)일’이다. <글 : 김성대 신라문화동인회 부회장>

 

제내리 마을 입구 못 이름은?

 

육의당 앞 못은 생태공원으로 잘 가꾸어 놓았다.
육의당 앞 못은 생태공원으로 잘 가꾸어 놓았다.

제내리 마을 입구에 있는 이 저수지는 토상지, 토상제,토성지 등 여러개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동경잡기는 토상호, 경주읍지에는 석호라고도 썼다.  
외동읍이 자연생태공원을 조성하고 만든 안내도에는 토성지라고 써두었고, 경주시장과 경주경찰서장이 공동명의로 수영금지등을 알리려 세운 조형물에는 토상저수지라고 써두었다.
경주풍물지리에는 토상제(土上堤)로 표기하며 이렇게 설명한다.
  신라때의 충신 박제상과의 관계된 전설이 전해온다.  조선현종때 철광석을 발견한 구충당 이의립의 「구충당일기」에 ‘박제상의 집은 치술령 뒤쪽 토상제 부근에 있다고 했다.

토상이나, 토성이나 둘다 마을의 근원과 무관한 것은 아니어서 틀린 이름은 아니겠지만, 이름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은 어떨까?.
네이버와 다음 지도, 국토지리원은 모두 토성(土城)소류지로 표기하고 있다.

 

토상저수지, 토성지. 행정이 세워둔 것도 이름이 다르다. 외동읍이 생태공원을 조성하면서 만든 안내도는 그 수명을 다한지 오래다.
경주시에서 세워둔 인접한 안내판 2개의 못 이름은 토상저수지, 토성지로 제각각이다.  아래 오른쪽 사진에서 보는 것 처럼 외동읍이 생태공원을 조성하면서 만든 안내도는 그 수명을 다한지 오래다.

 

제내1리 승강장.

가는길  : 시내버스는 603번, 604번 노선이 육의당 바로 앞 정류장을 지난다.  제내1리 승강장에서 내리면 된다. 
자동차를 이용하면 경주-울산 7번국도 울산방면으로 가다가 불국사를 지나, 영지 방면으로 우회전한 뒤 2차선 아스팔트길을 따라 가면 만날수 있다. 
http://kko.to/2RLeBoXHb8
 

육의당위치1
육의당위치 원경.
육의당위치2
육의당위치 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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