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용후핵연료 재공론화를 어떻게 바라봐야하는가?
[기고] 사용후핵연료 재공론화를 어떻게 바라봐야하는가?
  • 편집팀
  • 승인 2018.04.18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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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 경주 ‘고준위핵폐기물공동대응위원회’ 정책위원장
▲ 이원희 경주 ‘고준위핵폐기물공동대응위원회’ 정책위원장.전 경주경실련 사무국장

정부는 지난 2016년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를 통해 수립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계획에 대한 재검토와 사용후핵연료 재공론화에 대한 논의를 진행중이다. 지방선거 이후 7월부터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원전소재지역 주민들은 사용후핵연료 재공론화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고 입장을 표명하기 상당히 애매한 입장에 처해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용후핵연료 재공론화”를 어떤 측면에서 바라보고 무엇을 봐야하는지에 관한 의견을 남기고자 한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진행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는 사용후핵연료의 폐기나, 재처리, 원전정책의 확대 또는 축소에 대한 구체적인 정부의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고 추상적으로 진행되었다. 결국 공론화는 어느 한 지역에 사용후핵연료를 집중하는 집중중간저장방식을 채택하는가? 발전소 내에 분산하여 임시저장상태(소내 분산중간저장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를 유지하는가에 대한 기술적인 논의에 그쳤고, 지역의 의견들은 정부의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계획에 전혀 반영되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재공론화를 한다면 이번에는 과연 정부정책이나 계획에 반영될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재공론화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지역에 득이 될지 실이 될지 고민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필자는 결코 재공론화의 득실에 대해서는 언급할 생각은 없으며, 오히려 재공론화에 대한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것이 재공론화의 반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제기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낼 수 있다면 재공론화를 통해 실타래처럼 꼬여있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정책을 풀어낼 가능성은 존재한다. 그리고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사용후핵연료 재공론화에 대한 의문은 세 가지가 존재한다.

첫 째, 가장 큰 의문은 사용후핵연료 재공론화의 논의 범위가 과연 어디까지이며 재공론화의 논의 결과가 가지는 구속력이 어디까지인가라는 점이다. 국가의 에너지정책이 있고, 에너지기본계획에 따라 에너지 수급을 위한 원전의 비중이 결정된다. 그렇다면 원전의 비중을 확대할 것인가 또는 축소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과연 재공론화를 통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사용후핵연료는 결국 원전의 발전량에 비례해서 발생하기 때문에, 원전의 운영계획이 확정되지 않는다면, 결코 사용후핵연료만을 재공론화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물론 원전을 축소한다면 재공론화의 의의는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현재 우리나라는 핵확산금지조약(NPT)가입국으로 핵무기 보유가 불가능하고 재처리는 연구․실험용으로 극히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정부가 재처리에 대한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탓에 우리나라는 사용후핵연료가 고준위방사성폐기물에서 제외되어,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이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빠져있다.

즉, 고준위방폐물 관리계획과 관리정책을 수립해도 고준위방폐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웃지못할 상황에 처해있다. 참고로 일본은 재처리 대상이 되는 사용후핵연료만 핵연료물질에 포함시키고, 나머지 사용후핵연료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로 분류하고 있으며, 미국 역시 재처리와 실험용으로 정해진 일부의 사용후핵연료를 제외하고 나머지 사용후핵연료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HLW)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유독 우리나라만, 사용후핵연료 전체를 방사성폐기물에서 제외하고 핵연료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나라가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에 대한 정부정책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다. 이것은 재처리에 대한 정부정책이 확정되지 않으면, 사용후핵연료를 영구처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수로인 월성원전에서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는 발전용으로 재처리 할 수 없으며, NPT조약으로 인해 군사목적으로도 재처리 할 수 없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월성원전에 존재하는 사용후핵연료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에 해당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인정할 수 없다.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유치지역지원에관한 특별법」 제18조 유치지역에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저장시설을 건설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에, 정부가 중수로 방식 사용후핵연료를 고준위방사성폐기물로 인정하는 순간, 특별법 위반상태가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한번 질문을 하고자 한다. 재공론화를 통해서 우리는 도대체 어디까지 논의 할 수 있는가? 과연 원자력안전법 개정이라는 입법의 영역까지 재공론화의 논의범위를 확장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재처리에 대한 정부의 정책결정이 지연된다면 중간저장시설의 운영기간 또는 임시저장상태는 장기화되고 영구처분은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이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공론화가 풀어야할 가장 큰 숙제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재공론화를 통해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절차에 관한법률 또는 처분시설에 관한 법률, 그리고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계획에만 재공론화의 구속력이 미친다면, 재처리에 대한 정책결정의 몫은 정부에게 돌아가, 계획도 정책도 존재하지만, 고준위방폐물이 존재하지 않아 영구처분을 할 수 없는 딜레마는 계속 남게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공론화의 결과가 원자력안전법과 방사성폐기물 관리법 개정에도 구속력을 가질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러한 가능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둘 째, 그리고 두 번째 의문은, 바로 재공론화에 참여하는 대상의 대표성과 정보제공의 주체와 제공된 정보의 수준에 대한 것이다. 신고리 공론화처럼 성별․연령별․권역별 대표를 구성할 것인가? 그렇다면 그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주체는 누구인가를 살펴봐야한다. 신고리 공론화가 결정적으로 간과한 사실은 성별이나 연령별, 권역별 비례에 따른 추출로 샘플을 뽑는 방식이 특정사안에 대한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나 여론조사의 경우 그 대표성을 통계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지만, 워크숍, 토론회 등을 통해 각 개인이 내리는 의사결정은 지역이나 성별 연령을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워크숍이나 토론회의 공방과정에서 정보제공의 주체와 제공된 정보의 수준에 따라 시민대표참여단의 판단은 영향을 받게 된다. 즉, 선정된 개인은 ‘통계학적 대표성을 가질 수 있지만’, ‘의사에 대한 대표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이다. 의사에 대한 대표성을 가지려면, 예를 들어 미국의 대통령 선거인단을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따라서 신고리 공론화 과정에서 정부의 가장 큰 실책은 바로 시민대표참여단의 ‘의사의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과연 사용후핵연료 재공론화의 가칭 ‘시민참여대표단’ 선정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것이며, ‘의사의 대표성’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루어 져야한다.

세 번째, 마지막으로 재공론화에 대하여 남는 의문은, 얼마동안, 언제까지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스웨덴은 포스마크가 영구처분시설로 확정되기까지 약 30여 년간 공론화과정을 거쳐왔으며, 프랑스 뷔르는 2년 6개월 동안 각종 TV토론회, 공청회, 간담회 등을 통해 공론화가 진행되었다. 신고리 공론화는 3개월에 불과했다. 사용후핵연료는 신고리 5․6호기 건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내용을 다뤄야하고,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국가의 에너지기본정책에 대한 이해, 원전정책에 대한 이해,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기술적 지식, 방폐물관리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정보를 단시간 동안 참여자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그렇다고 해서 세미나나 워크샵을 통해 교육의 형태로 정보를 주입하는 것은 정보제공자의 입장에 따라 선입견이 개입되어 참여자의 판단이 오염될 수 있는 위험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정부는 이러한 방대한 정보를 어떠한 수단을 통해 중립적으로 참여자들 또는 국민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만 한다. 이러한 구체적인 정보전달에 관한 대안 없이, 원전사업자들과 원자력학회 소속의 학자들, 시민단체 또는 환경단체 대표들을 중심으로 토론회나 포럼 형식으로 운영한다면, 결국은 참여자 또는 국민들의 자의가 아닌, 이들의 역량에 따라 결정되어 공론화라는 참된 의미를 살릴 수 없게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재공론화는 이러한 의문을 모두 해결해야만, 지금 존재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고, 제대로 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계획과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재공론화를 검토하고 추진한다면, 지역은 또는 국민들은 바로 이점을 반드시 명심해야한다. 사용후핵연료 폐기에 관한 결정이 재공론화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거나, 입법과 정책에 대한 구속력이 확보되지 않고, 그리고 ‘의사의 대표성’과 ‘충분히 논의할 시간’과 ‘객관적이고 심도있는 정보제공’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결국 형식적 공론화 되풀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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