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인권변호사 권영국의 경주살이] ① 경주에서 만난 경이로움
[노동인권변호사 권영국의 경주살이] ① 경주에서 만난 경이로움
  • 편집팀
  • 승인 2017.10.26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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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 동궁과월지 유적에서 감탄한 신라인의 지혜
<경주포커스>는 10월26일부터 격주간으로 <노동인권변호사 권영국의 경주살이>를 새롭게 연재합니다. 지난 7월 경주에 법률사무소를 열고 본격적인 경주살이를 시작한 권영국 변호사의 글을 통해 경주의 다양한 일상에 내재된 양극화와 불평등, 교육, 환경, 농어민과 중소영세상공인, 지역자치와 복지, 지역의 잘못된 관행과 유착의 문제 등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하면서 사회적 해결을 모색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 편집자 

지난 7월 아내와 함께 이삿짐을 싸들고 서울에서 경주로 내려왔다. 작년 4월 경주에서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면서 “제가 정치를 하는 한 경주에서 하겠다. 저를 지지해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지역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다”고 한 약속을 상기하고 지나치게 보수일색으로 기울어진 경북의 정치지형을 바꾸겠다는 각오가 섰기 때문이었다.

지난 7월 21일 전공분야를 살리기 위해 경주역 가까운 곳에 ‘해우법률사무소’를 개소하고, 두 달 후인 9월 22일 지역 차원에서 인권의식을 높이고 시민운동과 풀뿌리민주주의를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경북노동인권센터’를 설립했다. 현재 센터에는 회원 300여명이 참여해 교육사업, 상담활동, 실태연구사업 등을 조금씩 준비해가고 있다.

센터 설립 후 첫 대외사업으로 ‘민변 노동위원회 전체모임’을 경주에서 개최토록 요청했다.
노동에 관심이 많은 변호사들로 하여금 경북지역의 노동현안과 문제점을 공유하고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향후 지역현안에 법률가들이 공동대응을 할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경주가 역사문화도시로서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과 매력을 알려주고 싶은 생각도 컸다. 민변노동위 전체모임은 10월 21일에서 22일까지 1박 2일로 경주에서 진행되었는데 서울에서 민변 노동위 소속 23명의 변호사가 내려오고 경주에서 나와 김동창 변호사가 참석했다. 꽤 많은 변호사들이 경주를 찾아와주었다.

 

▲ 삼국통일 전에 세워진 황룡사는 신라의 중심 경주에 백제기술자 200여명을 모셔와 백제에서 유행하던 목탑을 세우고, 부처를 모신 금당은 고구려 양식을 따와 세 개의 금당으로 지음으로써 신라와 백제 그리고 고구려를 조화시켜 처음부터 통일을 염원하는 의지가 녹아있는 건축물이라고 한다.

1일차에는 최근 고용노동부에서 불법파견으로 판정한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의 노동현실과 7년 이상 법정 투쟁 끝에 다시 현장으로 복직한 발레오만도 노동현황에 대해 설명을 듣고 불법파견과 부당노동행위를 둘러싼 법적인 쟁점들에 대해 토론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역사회 구성원들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도록 노동문제를 포함한 지역의 다양한 현안문제에 대해 인권차원에서 지원하고 연대하기 위해 경북노동인권센터를 설립하게 되었다고 소개했다. 경북에서도 인권센터가 생겼다는 것에 대해 기대감을 나타냈다.

 

2일차 오전에는 경주역사문화 해설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평이 나있는 김윤근 경주문화원장님을 문화해설사로 초빙하여 황룡사터와 안압지(동궁과 월지)를 방문하기로 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지역의 역사성과 문화적인 매력을 보여줌으로써 경주를 좋아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황룡사지에 도착했던 시각은 오전 10시경 바람막이가 없는 절터에 때마침 불기 시작한 태풍바람으로 인해 몸이 거의 날려갈 지경이었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은 얇은 가을옷을 걸친 몸들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김윤근 원장님의 문화해설은 놀랄만한 것이었다. “역사는 과거학이 아니라 미래학이다. 과거 속에는 미래로 가는 길이 있다”고 역설했다. 미래는 결국 과거의 연속이자 축적이다. 과거 속에서 우리는 조상들의 지혜를 볼 수 있다. 우리가 유적의 겉모습을 볼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조상의 얼과 혼을 알아야 우리 역사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건국신화들을 보면 힘센 자가 힘이나 무력으로 다른 세력을 제압하고 우두머리가 되어 나라를 세우는 것으로 나오는 반면, 신라는 여섯 부락의 대표자들이 모여 왕을 추대하고 합의로 나라를 세운 거의 유일무이한 나라라고 설명했다. 만장일치로 정사를 결정하는 화백제도를 통해 부족 간 평등과 평화를 추구했던 전통을 간직한 나라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황룡사는 사방 80리 평지로 이루어진 경주의 중심에 위치해있고, 진흥왕에서 시작하여 선덕여왕에 이르기까지 4대왕 93년에 걸쳐 완성한 대불사이다. 불력으로 외세를 막고 삼국을 통일하려는 원대한 꿈이 스며있는 곳이다. 삼국통일 전에 세워진 황룡사는 신라의 중심 경주에 백제기술자 200여명을 모셔와 백제에서 유행하던 목탑을 세우고, 부처를 모신 금당은 고구려 양식을 따와 세 개의 금당으로 지음으로써 신라와 백제 그리고 고구려를 조화시켜 처음부터 통일을 염원하는 의지가 녹아있는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국경을 사이에 두고 적대하고 있던 상대국의 문화를 배척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포용함으로써 정신적인 통합을 이루어내려고 했던 신라인의 지혜와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참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 황룡사, 동궁과 월지를 김윤근 경주문화원장의 해설을 들으며 답사했다.동궁과 월지에서 함께한 민변 노동위 소속 변호사들과.

이러한 정신은 삼국통일 후 만든 동궁과 월지에서도 똑같이 발견된다.
연못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고구려 산성을 상징하는 축조물을 쌓고 그 반대편에는 백제가 위치한 서해의 리아스식 해안을 흉내 낸듯한 부드러운 굴곡의 구조물을 만듦으로써 삼국통일 후에도 고구려와 백제의 문화를 조화시켜 정신적인 통일을 이루어내려고 했던 신라인들의 배려를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연못을 한눈에 볼 수 없도록 설계함으로써 작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가장 큰 연못을 만들어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인공 연못을 만들면서 물을 끌어들이고 배수하는 과정에 사용한 수리역학은 찬탄을 자아내게 했다. 물이 흐르는 물길의 폭과 높이를 변화시키는 방법을 통해 느림과 빠름을 조절해 연못에 이르기 이전에 물에 섞여 들어오는 모래와 이물질을 미리 걸러내는 기능까지 설계했다는 설명을 듣는 순간 신라인들의 치밀하고도 과학적인 사고에 그저 감탄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황룡사와 안압지에 대한 탐방은 신라인들의 통일에 대한 염원, 타 집단에 대한 포용력, 그리고 그 유적들의 축조에 사용된 지혜와 과학의 우수성을 느끼게 해준 소중한 기회이자 잘 알지못했던 경주의 경이로움을 발견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다음 역사탐방으로 아예 하루 날을 잡아 부처의 나라를 완전하게 담고 있다는 불국사와 석굴암을 가보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물론 김윤근원장님과 함께. 경주의 매력은 어디까지일까 벌써부터 호기심에 들떠있다.

그런데 첨성대 앞에 미국이 원산지인 억새 ‘핑크뮬리’를 심는 경주시의 문화행정은 누구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일까? 비싼 비용을 들여 역사적인 의미와 전혀 조화되지 않는 외래식물을 수입해 심고 그 겉보기 화려함으로 눈길을 끌어보려는 조급한 인식에 실망스럽다. 자랑스러운 역사를 만들어준 조상들에게 우리는 부끄럽지 않은지 돌이켜볼 일이다.

▲ 권영국변호사. 경북노동인권센터장.

필자 권영국은...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배고팠던 어린시절, 역경을 극복하는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 1981년 대학입학 후 사회에 대한 눈을 떴고, 야학에 참여해 공부한 노동법이 계기가 되어 방위산업체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그 대가로 두차례 해고되고, 합쳐서 3년6개월의 옥살이를 했다. 출소후 복직투쟁을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보안사 사찰 대상으로 취업이 제한된 처지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1999년 11월 제4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002년 민주노총 법률원 설립에 참여해 노동변호사가 됐다.민주노총 법률원장, 민변 노동위원장 등을 거치며 용산참사, 세월호 진상규명 등 국민들의 편에서 법정투쟁을 벌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경주에서 출마 했다 낙선했지만, 박근혜 전대통령 탄핵정국에서는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법률팀장을 맡아 싸웠다. 거리에서 무장경찰과 싸우면서 '거리의 변호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지난 7월 경주에 법률사무소를 열었고, 9월 경북노동인권센터를 창립했다. 지난 7월부터 경주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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