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의원, 경주시 역대 네번째 3선 국회의원 유력
김석기의원, 경주시 역대 네번째 3선 국회의원 유력
  • 김종득 기자
  • 승인 2024.02.28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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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월성군)를 지역구로 당선된 역대 3선의원들. 사진왼쪽부터 이협우(2대~4대) 박권흠(10대~12대)의원은 내리 3번 연속 당선된 반면, 김일윤 전의원은 3연속 당선된 적은 없다.
경주시(월성군)를 지역구로 당선된 역대 3선의원들. 사진왼쪽부터 이협우(2대~4대) 박권흠(10대~12대)의원은 내리 3번 연속 당선된 반면, 김일윤 전의원은 3연속 당선된 적은 없다.


[기사수정 보강 : 29일 오8시]
28일 국민의 힘 경주시선거구  공천후보 확정으로 김석기 의원이 3선을 눈앞에 두게 됐다.

경주포커스 확인결과 1948년 제헌의회 선거 이후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총선때까지  역대 경주시(월성군 또는 경주군)를 지역구로 둔 국회의원 중에서 3번 연속 당선된 국회의원은 2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변이 없는한 김석기 의원은 경주시 역대 세 번째로 3연속 당선자가 된다.
또한 3연속 당선은 아니지만, 최다선인 5선 김일윤 신경주대학 총장에 이어 3선이상으로는 역대 네번째 국회의원이 된다. 

’국민의 힘 공천=당선‘ 등식이 어렵지 않게 성립할 정도로 국민의 힘이 정당 지지율에서 압도적인 만큼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한 3선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주지역구 최초 3선은 민간인 학살 범죄자 이협우

이협우
이협우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이후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때까지, 78년동안 21번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주시(군)를 지역구로 3연속 당선, 즉 내리 3선에 당선된 이는 제2대부터 4대까지 이협우, 제10대부터 12대까지 박권흠 의원등 2명이다. 

경주지역 최초의 3선의원은 제2대~4때까지 연속 당선된 이협우다. 
그는  제2대(1950년5월30일)때 대한청년당 소속으로 경주군을에서 당선된 뒤 제3대(1954년5월20일)때는 무소속으로 경주군 을에서, 제4대(1958년5월)는 자유당 소속으로 월성군 갑에서 3선에 성공했다. 

한국전쟁 전후  혼란한 정국에서 민보단, 대한청년단 등 극우단체 단장을 역임한 그는 1948년 3월부터 1950년 8월까지 경주시 내남면에서만 100명이상의 민간인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한 혐의를 받던 범죄자였다. 

국회의원 위세에 눌려 침묵하던 내남면 주민들이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난 뒤에야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이 의원을 고소했다. 
그는 내남면 주민 85명을 살해한 혐의로 2차례에 나눠 기소돼 1961년 2월24일부터 이듬해 5월15일까지 이어진 1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분위기가 급변해 2심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고, 1962년 6월 28일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돼 처벌을 면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박권흠 전의원. 사진은 2015년 한 시사잡지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 사진 시사온.
박권흠 전의원. 사진은 2015년 한 시사잡지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 사진 시사온.

두번째 3연속 당선된 이는 박권흠 의원.
그는 유신헌법으로 치런 1978년 12월12일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주시. 월성군, 청도군을 지역구로, 그것도 야당 신민당 소속으로 처음 당선된 뒤 1985년2월12일 제12대 국회의원 총선거까지 내리 3선에 성공했다.

1978년 12월12일 제10대 총선에서는 유신헌법으로, 1981년 3월15일 제11대 총선, 1985년2월12일 제12대 총선은 모두 12.12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군부세력이 만든 국가보위입법회의가 1981년 공포한 선거법으로 선거를 치렀다.

3선을 연임하긴 했지만, 임기 4년을 온전히 채운 것은 제11대때 한번뿐이었다. 
1978년 유신정권 말기와 1980년 신군부가 집권한 제5공화국초기 격동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1978년 12월, 제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서는 임기 4년의 절반인 2년을 겨우 넘기고 1981년 3월15일 제11대 총선을 치러야 했다. 이때는 4년임기를 채웠다.
그러나 임기가 1985년부터 1989년까지이던 제12대 국회의원때에는 1987년 민주화운동이후 제9차 개헌으로 1988년 4월26일 제13대 총선이 확정되는 바람에 임기를 1년여 앞당겨 마감했다.

김석기 의원 당선되면 역대 두번째 3선 연임의원

2012년2월 23일 경주시청에서 기자간담회를 하는 새누리당 김석기 예비후보. 19대 총선에서는 현역 정수성의원에 밀려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다. 
2016년 4월13일 제20대 총선에서 당선 확정된뒤 기뻐하는 모습.
020년 4월15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2020년 4월15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직후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김석기 의원이 4월10일 제22대 총선에서 당선되면, 1985년 제12대 총선에서 당선된 박권흠의원 이후 39년만에  내리 3선에 성공하는 국회의원이 된다. 경주시 역대 세번째로 연임 3선의원이 되는 것이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처음 출마한 김석기 의원은 그해 새누리당이 현역 정수성 의원을 공천하자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다.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는 현역 정수성의원을 제치고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이어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는 초반에 컷오프 되기도 했지만, 재심청구 끝에 박병훈 후보 공천이 무효화 되고, 박 후보를 제외한 경선에서 김원길 예비후보를 이기고 공천에 성공하면서, 재선에 성공했다.

경주시 역대 최다선의원은 김일윤 신경주대학교 총장

김일윤 신경주대총장이 2020년 제20대 총선에서 출마해 기자간담회를 하는 모습. 김 총장은
김일윤 신경주대총장이 2020년 제20대 총선에서 출마해 기자간담회를 하는 모습.  후보를 사퇴해 완주하지는 않았다.

경주시 역대 최다선의원은 김일윤 신경주대학교 총장이다.
그러나 3번 연속으로 당선된 적은 없다. 

1985년 당시 46세이던 김 총장은 그해 2월12일 제12대 총선에서 경주시, 월성군, 청도군 선거구에서 야당이었던 민주한국당 소속으로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경주시와 월성군에서 각각 1명씩 선출하던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는 경주시선거구에서 민정당 소속으로 당선돼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는 당시 안기부장비서실장 출신의 집권여당 민자당 소속 서수종의원에게 자리를 내주면서 3선에 실패했다.

김 총장은 이어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경주시 갑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을 선거구 무소속 임진출의원과 함께 나란히 당선돼 마침내 3선에 성공했다.

여세를 몰아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소속으로 경주시 단일 선거구에서 당선돼 21세기 경주시의 첫 국회의원이자 4선 국회의원이 됐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당시 이명박 대통령당선의 공신으로 평가받던 한나라당 정종복의원에 밀려 낙선했지만,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는 친박연대 소속으로 출마해 5선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선직후 선거법위반으로  구속되고 대법원에서 최종 당선무효형이 확정되면서 국회의원직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김 총장은 5선이라고 주장하지만, 당선무효형은 선수(選數)로 포함되지 않으므로 4선 의원이라는 주장도 있다. 

김석기 의원이 제22대 총선에서 당선되면 이협우, 박권흠의원에 이어 내리 3선에 성공하는 역대 세 번째, 3선이상으로는 역대 네 번째 국회의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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