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70년 특별기획] ③ 산내면 진실화해위 진실규명은 박주덕 박태준 부자사건이 유일
[정전70년 특별기획] ③ 산내면 진실화해위 진실규명은 박주덕 박태준 부자사건이 유일
  • 김종득 기자
  • 승인 2023.06.07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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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내면 소재지에서 청도방향으로 동창천을 건너면 나타나는 원두숲 생태공원. 길건너편 원두숲에서 박주덕 박태준 부자가 총살당했다고 전해진다.
산내면 소재지에서 청도방향으로 동창천을 건너면 나타나는 원두숲 생태공원. 길건너편 원두숲에서 박주덕 박태준 부자가 총살당했다고 전해진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경주시 산내면 출신 희생자로 진실규명을 한 것은 2010년6월29일 ‘진실규명 결정’으로  판정한 산내면 의곡리 125번지 박주덕(당시 41.부) 박태준(당시 19.형) 2명이다.

산내면 의곡리 속칭 굴미마을에 살던 박주덕 부자는 경찰에 끌려가 1949년8월20일  의곡리 하천 원두숲에서 총살 당했다.

박주덕씨의 아들로 당시 10살이었던 진실규명 신청인 박모씨는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1949년 8월 20일 경주경찰서 소속 경찰이 ‘빨갱이에게 옷을 주려고 했다’며, 총 을 쏘면서 집에 불을 지른 후 박주덕, 박태준을 붙잡아가 의곡리 하천에서 총살하였다고 마을어른들로부터 들었다”고 진술했으며, 진실화해위는 이를 사실로 인정했다.

박주덕 부자의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문.
박주덕 박태준 부자의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문.

진실화해위는 결정문에서 “한국전쟁 발발 직후 군경에 의해 예비검속되었던 경주지역 국민보도연맹 원들이 관할 경찰서에 의해 연행되거나 소집 통보를 받고 출두하였다가 경찰서 유치장, 농협창고, 역전 극장 등에 구금되었다가 희생 되었다”며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각 지역에서 있었다는 진술과 문헌자료로 보아 전체 희생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기록했다.

이 사건은 2005년 12월 1일부터 2006년 11월 30일까지 1년 동안 신청된 ‘경주지역 민간인 희생사건 ’ 진실규명건으로 진실규명대상자 39명과 조사과정에서 인지된 희생자 10명이 희생당한 사실을 확인․추정하여 2010년6월29일 진실규명을 결정한 것이다. 

경주시를 비롯해 경북전역에서 보도연맹원들에 대한 예비검속, 빨치산에게 협력했다는 이유등의 혐의로 많은 민간인이 희생당했는데 산내면 박주덕 부자 사건도 이 가운데 하나였다.

산내면 공출창고(농업창고. 잠방)이 있었던 자리. 이곳에 많은 민간인이 억류돼 있다가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증언이 있다.
산내면 공출창고(농업창고. 잠방)이 있었던 자리. 이곳에 많은 민간인이 억류돼 있다가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증언이 있다.

진실화해위원회 기록에 따르면 대한청년단원으로 활동했던 이○○은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전쟁 전 경주 지역 중 특히 산내면 일대가 청도군 운문면과 인접해 빨치산의 활동이 활발했으며 그로 말미암아 빨치산에게 붙잡힌 후 도망을 나와 자수를 한 사람 들이 많았다. 이후 이 사람들은 전쟁이 나고 산내면 의곡에 있는 농업창고(잠방)에 구금 되었으며 본인이 직접 창고 입구에서 경비를 선 사실이 있다”라고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산내면 의곡 창고에 구금된 사람들의 경우 재판을 받으러 간다며 GMC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출발하였는데 그 사람들은 이후 건천에서 산내로 넘어가는 감산재 라는 곳에서 처형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진실화해위 결정문은 기록하고 있다. 

박주덕 부자의 경우 의곡리 원두천변에서 희생당했지만, 산내면에서 건천읍 송선리로 넘어가는 당고개에서도 상당수가 희생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진실화해위원회 기록으로는 2009년 9월8일 진실규명을 결정한 보도연맹원 예비검속 사건 희생자 김석태, 이규발씨등이 송선리 땅고개 또는 우중골에서 총살당했다는 기록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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