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인권변호사 권영국의 경주살이] ② 경주시에서 버려진 동네 – 외동읍 모화리를 찾아서
[노동인권변호사 권영국의 경주살이] ② 경주시에서 버려진 동네 – 외동읍 모화리를 찾아서
  • 권영국 시민기자
  • 승인 2017.11.09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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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갓길 30대 가장의 교통사망사고...안전사각지대의 참사

 

▲ 권영국변호사. 경북노동인권센터장.

지난해 20대 총선에서 경주시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고서 주민들에게 인사차 외동읍 모화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모화리가 경주시와 울산시의 경계에 위치한 경주시 최남단 마을이라는 사실을 그 때 알았다.
선거 명함을 들고 무작정 찾아간 곳은 모화리 금성크리스탈아파트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한 슈퍼마켓이었는데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께서 “여기는 높은 양반들이 잘 찾아오지 않는 곳인데”라며 어색해하면서도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는 국회의원 후보로서 아주머니에게 그 지역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주저 없이 “이곳을 지나가는 7번 국도가 너무 위험해요. 화물차도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도로에 인도도 없어요. 가로등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구요. 큰길에서 아파트로 들어오는 길이 거의 90도로 꺾여있어서 사고 위험도 높아요. 어디다가 얘기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구요. 이곳은 경주시로부터 버려진 곳이에요”라고 답했다.
경주시로 버려진 곳이라는 말이 뇌리에 박혔다. 하지만 나는 낙선했고 모화리를 잊었다.

그로부터 1년 반 가량이 지난 올 9월 다시 모화리를 찾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모화리 금성크리스탈 아파트에 세들어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는 사람으로부터 그곳에 와서 주민과 외국인들을 상대로 인권 및 법률상담을 해줄 수 있느냐는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제안을 수락하고 차를 몰아 가보니 바로 1년 반 전에 들렀던 그 슈퍼마켓이 보였다. 경주시에서 버려진 동네를 다시 찾은 것이다. 한 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모화리 작은 도서관을 방문해 독서모임과 법률상담을 하기로 약속했다.

세 아이 아빠 30대 가장의 안타까운 죽음...귀가길 갓길서 참변

▲ 지난달 25일 모화리 '작은도서관'에서 주민들과 만나 대책을 의논했다.

그런데 9월 29일 모화리 주민이자 세 아이의 아빠인 39세 남성이 야간에 울산 경계지점에서 택시에 내려 도로 갓길을 이용해 모화리 집으로 귀가하던 중 15톤 트럭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가 난 곳은 바로 포항과 경주, 그리고 울산으로 이어지는 산업도로인 7번 국도였다. 7번 국도는 산업단지가 모여 있는 외동읍 모화리 앞을 길게 지나고 있다. 그 사고로부터 1달 가량이 다 되어갈 무렵인 10월 25일 작은 도서관을 방문했다. 그 때에서야 39세 남성이 택시비를 아끼려고 시 경계지점에서 택시를 내려 가로등도 없는 7번 국도 갓길을 걸어오다가 도로를 질주하던 화물트럭에 받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주민들은 도로에 가로등만 있었어도 사고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작은 도서관에 모인 주민들이 7번 국도에 대해 전해준 말은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최근 5년간을 살펴보면 경주시는 전국 78개 도시 중에 매년 78위로 가장 위험한 도시로 기록되고 교통사고 사망률도 전국 평균보다 2.5~3배 가량 높았으며, 7번 국도 모화리 구간은 평균 사망자가 9명으로 경주지역 교통사고 사망자 69명 중 13%가 이곳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결국 모화리 구간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위험한 도로라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 그 불명예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경주시내에서 불국사역까지의 제한속도는 시속 60㎞이고, 모화리부터 울산 쪽 구간의 제한속도는 시속 70㎞인 반면 그 사이에 끼인 불국사역에서 모화리까지 13㎞ 구간의 제한속도는 시속 80㎞로 최고 높다. 그조차도 속도제한 카메라가 1차선만 단속하고 있어 2차선을 달리는 화물차량은 속도를 낮출 필요가 없다. 게다가 불국사역에서 모화리 경계에 이르는 13㎞ 구간에는 인도가 거의 없으며, 도로변에는 가로등조차 없다. 모화리 주민들은 교통사고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어떻게 이런 위험이 계속 지속되고 있었을까? 도로의 관리와 관련하여, 불국동(洞)까지는 경주시의 관할인 반면, 불국동을 넘은 외동읍 도로는 시의 관할이 아니고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의 소관으로 포항국토관리사무소에서 관리하도록 나뉘어 있으며, 경주시 도로의 제한속도 설정과 변경은 경주경찰서장의 권한으로 되어있다. 외동읍 도로에서 교통사고 위험이 최고인 것은 이처럼 관할 기관이 분산되어 있다 보니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쉬운 구조였던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안전 위해 주민들이 나서...관계기관 종합대책 절실

▲ 11월3일 외동읍장을 만나 대책을 요구했다.

전국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외동읍 모화리 구간의 교통사고 사망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차도 양편에 ‘인도’를 만들어야 하고, 가로등과 안전 펜스를 설치해야 한다. 그리고 “시내에서 불국동까지 적용하고 있는 속도(60㎞)”를 외동읍 모화리 구간에도 연장 적용해 차량의 제한속도를 낮추어야 한다. 지금까지 경주시청을 포함해 국토관리청, 경주경찰서 등은 모화리 구간의 교통사고 사망률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서로 외면해온 셈이다. 그로 인해 외동읍 모하리는 경주시에서 버려진 동네처럼 취급되어 온 것이다.

지난 10월 25일 모하리 주민들이 ‘초록그물코 작은 도서관’에 모여 마침내 ‘7번 국도 안전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나는 법률 자문을 해주기로 했다. 그 날 대책위는 읍장실을 방문해 7번 국도의 안전을 위해 협력해줄 것을 요구하고 ‘안전한 마을 만들기’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경주시청에 연락해 7번 국도와 관련된 기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주민간담회를 요구했다. 7번 국도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관련 기관의 실무책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종합적인 대책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 대책위의 활동은 진행형이다. 대책위의 활동이 이번 기회에 경주시의 시정을 조금이라도 바꾸어낼 수 있을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버려진 동네의 주민들이 스스로 자신의 안전과 권리를 찾기 위해 일어섰다는 사실이다.
‘7번 국도 안전대책위원회’ 파이팅!! 주민자치 파이팅!!!

필자 권영국은.....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배고팠던 어린시절, 역경을 극복하는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 1981년 대학입학 후 사회에 대한 눈을 떴고, 야학에 참여해 공부한 노동법이 계기가 되어 방위산업체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그 대가로 두차례 해고되고, 합쳐서 3년6개월의 옥살이를 했다. 출소후 복직투쟁을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보안사 사찰 대상으로 취업이 제한된 처지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1999년 11월 제4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002년 민주노총 법률원 설립에 참여해 노동변호사가 됐다.민주노총 법률원장, 민변 노동위원장 등을 거치며 용산참사, 세월호 진상규명 등 국민들의 편에서 법정투쟁을 벌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경주에서 출마 했다 낙선했지만, 박근혜 전대통령 탄핵정국에서는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법률팀장을 맡아 싸웠다. 거리에서 무장경찰과 싸우면서 '거리의 변호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지난 7월 경주에 법률사무소를 열었고, 9월 경북노동인권센터를 창립했다. 지난 7월부터 경주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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