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지붕없는 박물관 남산 <1> 서남산
[2017년 1월] 지붕없는 박물관 남산 <1> 서남산
  • 김종득 기자
  • 승인 2017.01.24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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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 한수원과 함께 하는 경주사랑 역사문화탐방

▲ 1월 탐방 참가자들이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한수원과 함께 하는 경주사랑 역사문화탐방> 2017년의 시작, 1월 탐방은 21일 지붕없는 박물관, 세계문화유산 경주남산을 탐방했다.
경주남산에서도 문화유적을 한꺼번에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삼릉계곡을 따라 금오산을 오른뒤 용장사터 3층석탑으로 유명한 용장계곡으로 이어지는 구간이었다.

1월 탐방엔 40명이 참여했다.
지난해 경주로 본사를 옮긴 한수원 본사 직원들과 경주시민들의 상호교류를 도모한다는 취지에 걸맞게 경주시민, 한수원 직원들이 두루 참여했다. 이번달에는 경주 이외지역에서는 부산에서 많은 탐방객들이 참가했다. 오전 9시 신라문화원에서 집결한뒤 남산으로 이동, 오전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됐다.

지난해 경주로 본사를 이전한 한국수력원자력(주)이 경주시민들에게 '경주 바로 알기'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후원하는 <경주사랑 역사문화탐방>은  월1회 5천원의 저렴한 비용으로 참가할 수 있다.
탐방은 경주 최고의 답사전문 문화단체인 신라문화원이 주관한다. 문의및 참가신청. 774-1950.

2017년 2월 탐방은 넷째토요일인 25일 동남산으로 향한다.
두 번째 남산 탐방으로, 서출지와 남산동 쌍탑, 칠불암을 거쳐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까지 둘러본다.
아래는 1월 서남산 탐방에서 만난 주요 문화재.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 삼존불. 부처님의 미소가 아름답다.
이날 탐방에서 가장 먼저 만난 문화재는 보물 제63호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慶州 拜洞 石造如來三尊立像) .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 석불은 경주남산 기슭에 흩여져 있던 것을 일본인들이 발굴하여 1923년 10월에 현 위치에 모아 세워 놓은 것이다.
이 석불들은 기본양식이 똑같아 처음부터 삼존불(三尊佛)로 모셔졌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각솜씨가 뛰어난 다정한 얼굴과 몸 등에서 인간적인 정감이 넘치면서도 함부로 범할 수 없는 종교적 신비가 풍기고 있는 작품으로 7세기 신라 불상조각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문화재다.

삼릉-울창한 소나무숲속 삼릉 무덤 주인공은?

▲ 삼릉에서.
삼존불을 만난 다음 남산 탐방로를 따라 삼릉으로 향한다.최근에 산책길처럼 탐방로가 잘 정비됐다.
삼릉주변은 소나무로도 유명한 곳이다.
사적 제219호 경주배동 삼릉은 남산 서쪽 기슭에 동서로 3개의 왕릉이 나란히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밑으로부터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 등 박씨 3왕의 무덤이라 전하고 있다. 무덤은 모두 원형으로 흙을 쌓아올린 형태를 하고 있다.

신덕왕릉이라 전해오는 가운데의 무덤은 1953년과 1963년에 도굴 당하여, 내부를 조사한 결과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임을 확인했다.
무덤에는 돌방 벽면에 병풍을 돌려 세워 놓은 것처럼 동·서 양벽의 일부에 색이 칠해져 있는데, 이것은 본격적인 벽화는 아니지만 벽화가 그려지지 않은 경주의 신라 무덤에서는 처음 발견되는 것으로 주목되는 자료이다. 색은 붉은색, 황색, 백색, 군청색, 감청색으로 되어있고, 12폭으로 되어있다.

경주 배동 삼릉의 주인공이 신라의 박씨 3왕이라 전하고 있지만 확실한 기록은 없고 신라 초기의 아달라왕과 신덕왕, 경명왕 사이에는 무려 700여년의 차이가 있어 이들의 무덤이 한곳에 모여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한 신라 초기에는 이와 같은 대형무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었다. 무덤의 주인이 현재 전해오는 것과는 다른 가능성이 큰 것이다.

삼릉계곡석조여래좌상

▲ 삼릉계곡 석조여래좌상
삼릉에서 개울을 따라 약 300m쯤 올라가면 길 옆 바위 위에 머리 없는 석불 좌상이 보인다. 높이가 1.6m 무릎너이가 1.56m 되는 큰 좌불이다. 60년대 중반까지 약 100m 떨어진 지점의 소나무 숲속에서 있던 것을 발굴하여 지금 장소로 옮겨 놓은 것이기 때문에 마멸이 심하지 않고 옷 주름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다만 머리가 없어지고 두 무릎이 파괴되어 손 모양을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삼릉계곡마애관음보살상 (三陵溪谷磨崖觀音菩薩像)

▲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
석불좌상에서 왼쪽으로 30여미터를 오르면 바위에 새긴 관음보살상을 만난다.
돌기둥 같은 암벽에 돋을새김한 것으로 연꽃무늬 대좌(臺座)위에 서 있는 관음보살상이다.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만면에 미소를 띤 얼굴은 부처의 자비스러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손에는 보병(寶甁)을 들고 있어 보관과 함께 이 불상이 현세에서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불상 뒷면에는 기둥 모양의 바위가 광배(光背) 역할을 하고 있는데, 자연미에 인공미를 가한 느낌이다.

이 불상은 정확한 연대와 조각자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선각육존불

▲ 선각 육존불위에서 법당이 있던 흔적을 확인하고 있다.
다시 정상부로 향하다 거대한 바위에 새긴 부처님을 만난다. 삼릉계곡선각육존불이다.(경북도유형문화재 제21호)

자연 암벽의 동서 양벽에 각각 마애삼존상을 선으로 조각한 6존상으로, 그 조각수법이 정교하고 우수하여 우리나라 선각마애불 중에서는 으뜸가는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오른쪽 삼존상의 본존은 석가여래좌상이며, 그 좌우의 협시보살상은 온화한 표정으로 연꽃을 밟고 본존을 향하여 서 있다. 왼쪽 삼존상의 본존 역시 석가여래로서 입상이며, 양쪽의 협시보살상은 연꽃무늬 대좌 위에 무릎을 꿇고 본존을 향해 공양하는 자세이다.

이 2구의 마애삼존상은 만들어진 시대나 조각자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대체로 통일신라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오른쪽 암벽의 정상에는 당시 이들 불상을 보존하기 위해 법당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마애여래좌상

▲ 마애불상앞에서 박주연 문화유산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선각육존불에서 약200m정도 동으로 등성이를 따라 올라가면 넓은 절벽바위가 서향을 하고 서 있는데 그 암벽중앙에 지름2.5m되는 연꽃 위에 설법인을 하고 앉아 계신 여래상이 있다.
몸체는 모두 선각으로 나타냈는데 얼굴만은 윤곽이 드러나는 돋을새김을 하였다.
얼굴 모습은 유명 개그맨 남희석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각시탈을 닮았기도 하다. 신라시대 범부의 모습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두눈썹과 눈은 아주 가깝고 코는 길고 입술은 두텁고 커서 균형 잡힌 얼굴이라 할 수 없으나 소박한 위엄이 있다. 머리 뒤에는 신광을 표현하였다. 조각이 이루어진 시기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이견을 제시하고 있는데 대체로 통일신라말기 또는 고려초기로 보고 있다.

삼릉계석조여래좌상

▲ 일제때 흉물스럽게 보수했던 시멘트를 떼내고 최근 새롭게 얼굴부분을 보수했다. 아래 보수전 모습과 크게 다른 모습이다.

▲ 일제 강점기 시멘트를 이용해 얼굴을 보수한 모습.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慶州 南山 三陵溪 石造如來坐像).
마애 여래좌상에서 동남쪽으로 100m정도 가면 또 하나의 바위무리가 있고 그 동쪽에 순백화강암으로 조성된 여래상이 화려한 연화대석 위에 앉아 계신다. 연화대좌는 하대석 없이 땅에 있는 지대석 위에 직접 놓은 중대석 위에 얹혀 있다. 화강암을 조각하여 만들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큼직한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자리잡고 있다. 얼굴은 원만하고 둥글며, 두 귀는 짧게 표현되었다.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은 옷의 옷주름선은 간결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허리는 가늘고 앉은 자세는 안정감이 있다. 대좌(臺座)는 상·중·하대로 구성되었는데, 상대에는 화려한 연꽃무늬를 조각하였으며, 8각 중대석은 각 면에 간략하게 눈모양의 안상(眼象)을 조각하였다. 하대는 단순한 8각대석으로 되어 있다.

8각의 연화대좌에 새겨진 연꽃무늬와 안상을 비롯하여 당당하고 안정된 자세 등으로 보아 8∼9세기에 만들어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석조여래좌상은 머리는 골짜기에 떨어져 있었고, 불신은 앞으로 광배는 뒤로 쓰러져 있던 것을 1923년에 보수했다. 이때 이미 코 이하의 얼굴 부분은 손상을 입었는데, 그 뒤에 시멘트로 엉성하게 보충하여 얼굴이 매우 부자연스러웠다. 최근에 시멘트로 보수했던 부분을 새롭게 하여 자연스럽게 되었다.

상선암 마애대좌불

▲ 상선암 마애대좌불
상선암위쪽 거대 바위에 대좌불이 있다.
동서의 길이가 6m 가량 되고 남북 너비가 4.3m되는 평평한 터가 있는데 그 북면에 남향으로 높이가 7m이고 너비가 5m되는 광배형으로 생긴 암벽에 너비 4.2m되는 큰 연꽃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설법인을 표시하고 먼 하늘에 시선을 두고 온 누리를 굽이 살피는 모습이다.
여래상은 높이가 5.21m이고 무릎너비가 3.5m가 되는 대불이다. 얼굴과 어깨는 광배면에서 66.6cm이며 높은 돋을새김으로 사실적인데 비해 옷주름이나, 손과 발은 부피 없는 선각으로 나타내었다.

주변 암벽이 지속적인 풍화로 전체적 균열 및 파손이 진행됨에 따라 대형 낙석발생 등의 위험성이 높아 방객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출입통제로 금오봉으로 향하는 능선에서 먼발치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경주남산용장사곡삼층석탑

▲ 용장사곡삼층석탑
금오산 정상을 지나 용장계곡방향으로 내려가다 만나는 삼층석탑. 보물 제186호 지정된 탑이다.
매월당 김시습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금오신화』를 쓰며 머물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는 용장사터를 감싸고 뻗은 동쪽 바위 산맥의 높은 봉우리에 서 있는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세워진 3층 석탑이다.

자연암석을 아래층 기단으로 삼고, 그 위로 바로 윗층 기단이 올려져 있다. 즉, 자연암석이 아래층 기단일 수도 있고 그 아래 바위산 전체가 또한 아래층 기단일 수도 있는 셈이다. 유홍준 전문화재청장은 이런 이유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고도 했다.
탑신(塔身)은 지붕돌과 몸돌을 별도의 석재로 조성하였다. 1층 몸돌은 상당히 높은 편이고 2층부터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층 4단이고 처마는 직선을 이루다가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들려 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없어져 원래의 상태를 알 수 없고 쇠막대를 꽂았던 구멍만 남아 있다.

쓰러져 있던 것을 1922년에 재건하였는데, 사리장치는 없어진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고 한다. 각 부의 조화가 아름다우며 주변 자연과의 조화 속에 장관을 이루고 있는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 삼륜대좌불옆 마애여래좌상
보물 제913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87호)의 뒤쪽 바위벽에 새긴 마애여래좌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원만한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양 어깨에 걸쳐 내린 옷에는 평행선으로 이루어진 잔잔한 무늬가 밀집되어 있다. 손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배 부분에 놓여 있다. 불상은 연꽃이 새겨진 대좌 위에 양 발을 무릎 위로 올린 자세로 앉아 있으며, 머리광배와 몸광배는 2줄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아직 판독은 어려우나 글자가 10자 새겨져 있고, 보존 상태도 양호해 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삼륜대좌불)

▲ 탐방참가자들이 삼륜대좌불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보문 제187호.
용장사곡 삼층석탑에서 용장사터로 내려오다 만나는 문화재다.
남산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큰 사찰이었던 용장사터를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머리 부분은 없어졌고 손과 몸체 일부가 남아 있는데 대좌에 비해서 불상은 작은 편이다. 어깨는 적당하고, 전반적으로 볼륨이 강조되지 않은 현실적인 체구로 어떤 승려의 자세를 보고 만든 것으로 보인다. 불상이 입고 있는 옷은 양 어깨를 모두 감싸고 있으며, 옷자락이 대좌(臺座) 윗부분까지 흘러 내리는데, 마치 레이스가 달린 것처럼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대좌는 자연기단 위에 있는 특이한 3층탑이라 생각될 만큼 특이한 원형(圓形)인데, 맨 윗단에는 연꽃무늬를 새겨 놓았다.

이 석불은 특이한 대좌 뿐 아니라 석불 자체의 사실적 표현이 작품의 격을 높여주며, 『삼국유사』에서 보이는 유명한 승려 대현(大賢)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유명한 불상이다. 대현의 활동 기간에 제작되었다고 보아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KBS 포항 라디오  <생생매거진 동해안 오늘> 소속 리포터가  탐방에 참가한 어린이를 인터뷰하고 있다. 특집방송은 23일 KBS 포항라디오를 통해, 27일 전국 네트워크를 통해 방송한다.

*문화재 설명=문화재청 자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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