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 아날로그를 추억하고 꿈꾼다
디지털시대, 아날로그를 추억하고 꿈꾼다
  • 김희동 기자
  • 승인 2013.03.26 2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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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경주 멋과 향수] 6. 음악과 낭만의 레코드 가게와 녹음테이프

 

▲ 낡고 오래 된 것에서 더욱 정겨움을 느낄 수 있다. 레코드 판이 돌아가자 음악이 흘러나왔다.
음악은 삶의 여백을 채운다. 
심심할 때, 쉬고 싶을 때 , 생각을 할 때, 위로 받고 싶을 때 듣는 이유도 사람마다 다르다.

주변의 많은 청소년들은 의자를 뒤로 젖히고 다리까지 흔들면서 mp3로 음악을 들으며 수학문제를 풀고 거기다 한손으로는 카톡으로 친구들과 문자를 주고받는 신기에 가까운 멀티 플레이를 보이며 공부를 한다. 이미 그들은 오래된 습관처럼 그렇게 하면서도 할 건 다 한다. 이쯤 되면 그들이 귀에 꼽고 있는 이어폰을 확 뽑아 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따뜻하고 아련한 아날로그적 감성

청소년들에게 mp3라는 거부할 수 없는 디지털 음악이 있다면  7080세대 이상은 아날로그의 상징인 레코드판(LP판)이 있다.

음질이 정제된 CD나 USB의 소리가 아닌 소음처럼 아스라하게 바늘 긁는 소리가 들리는 LP판 음악이 디지털 시대 한가운데서 ‘아날로그’를 외친다.

성건동....
차를 마시기 위해 찾은 커피전문점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LP판에서 오래된 유물을 발견한 것 같은 감동으로 가슴이 뛰었다. 실내를 가득 메운 클래식 선율은 전자파일로 만들어진 음악은 따라 올 수 없는 깊이와 울림으로 차원이 다르다.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무장된 요즘,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곡을 mp3로 다운받아 승용차에서나 산책을 하거나 언제든지 들을 수 있다. 요즘 청소년에게 좋아하는 곡을 반복해 듣기 위해 턴테이블 바늘을 옮겨가면서 트랙과 트랙사이의 실낱같은 빈공간위에 바늘을 정확히 올려놓고 음악을 들었다는 이야기는 옛날 옛적 간 날 갓적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지금은 CD에 밀려 사장된 제품이 되다시피 했지만 레코드판의 향수에 젖었던 사람들은 큰 자켓과 레코드판을 턴테이블에 올렸을 때 나오는 잡음과 깊게 들리는 음악의 매력에 사로 잡혔다. 지금도 CD보다 LP판을 선호하는 사람은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대학시절 어렵게 용돈을 모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레코드판을 사온 날, 방에 불을 끄고 검정 헤드폰을 쓰고 귓바퀴가 아프고 먹먹해질 때까지 음악을 들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가늘게 빛나는 계기판의 빨간색 불빛이 오르내리는 것을 바라보며 몽환의 블랙홀로 빠져 들었다. 미닫이문 사이로 가사 한 줄이라도 몰래 빠져 나가 부모님 귀에 들릴까 가슴 졸이며 들었던 불면의 밤이 우리에게는 분명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적어서 레코드가게에 갖다 주면 녹음을 해주었던 그 시절, 물론 불법이었지만 공테이프에 여러 노래를 섞어서 레코딩 해주는 것이 유행이었다. 가끔은 천하무적 ‘지구 레코드사’ 나 ‘오아시스 레코드사’ 같은 메이저 회사의 LP나 테이프를 제치고 가게주인의 기획 상품으로 수입을 창출하며 암암리에 활발하게 거래가 됐다. 또 하나의 매력은 녹음한 곡들의 제목을 공테이프 인덱스에 직접 써 주던 녹음 전담 여직원의 강낭콩 닮은 필체는 흉내내기 힘든 특이한 필체로 기억된다. 녹음테이프 가격도 그렇게 비싼 편이 아니었기에 하나, 둘 늘어나 책상서랍을 가득 채웠다.

 

▲오래전 부터 단골이라는 임상혁씨(40.황성동) 가 여성걸그룹의 신곡을 고르다 익숙치 않은지 백지영 베스트 CD를 찾고 있다. 
‘응답하라’ 경주의 레코드가게

80~90년대 잘 나갈 때는 경주지역에만 20여개의 레코드가게가 있었다고 한다. 90년에 만들어진 경주지역 음반협회 수첩에는 대전소리사, 서라벌레코드, 에드립, 시민소리사, 소리방, 까치레코드, 음악도시, 보영레코드, 뮤직랜드, 뮤직갤러리, 하늘나무소리방, 현가락, 까치소리방, 노찾사, 에밀레 등 13개가 등록돼 있었다. 아파트단지, 큰 도로를 중심으로 레코드가게가 들어서던 시절이었지만 지금은 4~5군데만 명맥을 잇고 있다.

오가며 레코드가게 앞을 지나노라면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에 종종 걸음을 멈추고 음악을 끝까지 듣고 가 던 길을 갔다. 시간의 얽매임이 없었던 마냥 순수했던 그 시절 우리의 감성을 아름답게 했던 경주의 레코드 가게를 찾아보았다.

 

▲ 43년 간 한곳을 지키고 있는 대전소리사
대전소리사 -고향 지킴이로, 80~90년대엔 호황 누려

가게 문이 열리자 윤제순 사장(73)은 먼저 라디오를 켠다. 스피커에서는 여성아나운서의 경쾌한 목소리와 음악이 종일 상가에 울리며 고객과 상인들의 귀를 심심하지 않게 해준다.

대전소리사는 43년간 한곳에서 영업을 하며 경주 중심상가 전성기를 지켜온 터줏대감이다. 윤 사장은 그간의 스토리를 조곤조곤 들려줬다. 긴 역사에 비해 진열된 LP판은 달랑 5장, 그것도 팝도 아닌 클래식 음반이었다. 몇 년 전 LP판을 만드는 회사가 문을 닫아 더 이상 제작을 하지 않는 다는 소문이 돌자 마산에서 온 고객이 한꺼번에 다 사갔다고 한다.

윤 사장은 “남은 판은 딸이 좋아하는 것이라 팔지 못하게 해 5장만 따로 남겨 둔 것이다” 며 “판을 판매하지 않고 따로 보관해 두었는데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공부하고 결혼하는 동안 세월이 많이 지나서 이제는 전축이 없어 판을 틀 수가 없다”며 멘델스존의 ‘한여름밤의 꿈’을 뜯지도 않은 채 보관해두고 있었다.

▲ 고향 지킴이를 자처하는 윤제순 사장

인터뷰 중간 중간 가게를 정리하며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가게 유리에 잘생긴 남성 아이돌 브로마이드를 붙이며 바르게 붙어졌는지 확인을 해 달라고 했다.

“오늘 인피니트 신곡이 새로 나와서 택배를 찾으러 고속버스터미널에 다녀왔더니 좀 바쁘네”라며 손님접대에 소홀한 것을 미안해했다.

잠시 앉은 평상이 43년 전 만원을 주고 제작한 원목평상이라며 가게안 모든 물품들이 거의 기자의 나이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낡아서 더 정겨운 물건들은 주인의 성품을 닮아 정갈하면서 따뜻함이 묻어 있었다. ‘매월 첫째, 셋째일요일은 휴일’이라는 아크릴판도 진열장에서 세월과 함께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장사가 잘돼서 휴일도 없이 가게가 문을 여니까 음반협회가 지정한 날에 문을 닫지 않으며 쌀 한가마니 가격 정도를 벌금으로 내야 했다”면서 “요즘은 내 마음대로 놀고 시간 날 때는 여행도 가고 산에도 가고 손주랑 세계여행을 다닌다”며 환하게 웃었다

오히려 단골들이 가게 문을 닫을까 걱정하는 대전소리사. 경주에 어떻게 대전소리사라는 상호를 사용하게 됐을까 궁금해 하는 기자에게 “시어른이 장사를 해 돈을 많이 벌어서 땅을 사라는 뜻에서 대전(大田)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단 한 번도 불법으로 돈을 벌어 본 적이 없다는데 그래서 녹음한 테이프를 판매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녀들은 그만두라고 하지만 좋은 음악 들으면서 고향을 지키고 싶다는 것이 윤재순 사장의 바람이다.

▲ 중년들의 사랑방 같은 시민소리사

시민전자-음악이 좋아 무작정 시작, 주 고객 중년층 사랑방으로…

인기 많았던 고등학교 교사는 교직을 그만두고 1990년 선친이 하던 시민소리사를 물러 받아 레코드가게 주인이 됐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음악을 좋아할 것이라 믿고 좋아하는 음악도 실컷 듣고 수입도 쏠쏠했으니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시민소리사는 64년에 농협중앙회 건너편에 문을 열었다가 90년에 현재 경주역 옆으로 이사를 하면서 신홍섭 사장은 시민전자로 상호를 바꾸었다.

이 가게에는 테이프와 CD외에 전화기, 녹음기, 드라이기, 계산기, 전기면도기 등 다양한 전자제품도 진열돼 있다. 그리고 기술교사를 지낸 신 사장은 전공을 살려 고장 난 가전제품을 고쳐주고 있다.

신사장이 전축위에 올려놓은 LP판에 핀을 올리자 판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며 판 중가에 쓰여진 ‘김추자 베스트 곡 모음’이라는 글자도 같이 돌았다. 섹시디바의 원조 김추자의 ‘님은 먼곳에’가 스피커를 타고 가게 앞을 점령했다.

▲ 2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신홍섭사장
신 사장은 “가끔 거리를 지나는 손님들이 음악을 듣고 테이프나 LP판을 사 가기도 했는데, 요즘은 경기가 어려운지 그렇게 즉흥적으로 사가는 손님이 없다”며 아쉬운 듯 말했다.

이곳의 주 고객은 50대가 많다. 올드팝·트로트·7080 포크송 등을 모두 소화하는 계층이기 때문이다. 노인들도 자주 오곤 하는데 요즘 나오는 CD를 틀 줄 몰라 녹음기와 테이프를 사는데 노래교실에 나가는 노인들이 미리 연습을 하기 위해서란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10년 된 승용차에서 듣기 위해 박인희의 테이프를 하나 샀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눈부시도록 햇살 좋은 봄날에는 박인희의 노래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산너머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 온다네 뽀얀 논밭에도 온다네. 아지랑이 속삭이네 봄이 찾아온다고 어차피 찾아오실 고운 손님이기에 ...”

▲ 경주의 문화1번지 소리방
소리방-음반시장 위축, 부업으로 옷가게 호황

학창시절 트럼본을 멋들어지게 불며 밴드부 악장을 하며 예능적으로 다재다능한 끼를 보유한 하종호 사장(57)은 27년째 소리방을 운영하고 있다. 음악이 좋아서 다니던 건설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가게를 시작했다. 회사를 다닐 때는 LP판을 옆구리에 몇 장씩 끼고 다니며 틈날 때마다 음악을 들었다. 70~80년대 당시엔 대부분이 월급 타면 제일 먼저 달려가는 곳이 레코드가게였다고 한다.

이번 ‘경주의 멋과 향수 -4-레코드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사장들의 공통점이라면 오로지 외길 음악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 소리방도 그 전통을 이어오다 3년 전 음반시장 위축으로 경영난을 겪게 되자 가게를 반으로 줄이고 옷가게를 부업으로 시작했다.

소리방을 운영하고 있는 하 사장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는 것은 그래도 이곳이 경주의 문화1번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하나다.

▲ 젊은이의 거리에서 삼촌같은 하종호사장
지난 2000년에는 배두나와 김래원이 주연이었던 영화 ‘청춘’을 이곳에서 촬영했고, 경주를 찾은 가수들은 꼭 이곳을 들러 음반 홍보를 했다고 한다. 빛바랜 사진 속에는 조갑경, 조덕배, 이규석, 신촌블루스 등 익숙한 얼굴의 7080 가수들이 인기와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며 웃고 있었다.

하 사장은 “8-90년이 전성기였다”면서 “조성모, 변진섭, 이문세, 김건모 등이 활동하던 시절은 테이프를 쌓아 놓기가 바쁘게 팔렸다”고 회고했다.

벚꽃이 필 때라 그런지 이곳에서는 버스크버스크의 ‘벚꽃 앤딩’이 흘러 나왔다. 음악은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 종일 트는데 이곳에 젊은이들이 많이 다녀 주로 신곡 위주로 선곡을 해서튼다고 한다.

 

 

레코드가게 앞을 지나면 여전히 기분이 묘해진다. 이렇듯 지금의 30대 이상에게는 저마다 한 가지씩 추억이 묻어 있을 법한 공간. 그 공간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며 각자의 추억도 함께 사라져 가고 있다. 그 속에서도 여전히 문을 닫지 않고 추억을 파는 곳이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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